KRBS - 적강

소재 조각글(의식의 흐름)

가우 2017. 6. 2. 11:08

* '아카시'라는 단어 생각나서 적었던 글


- 아카시 [あかし]

증거; 증명; 특히, 결백의 증거.

[문학]분명하다; 밝다; 맑다; 깨끗하다.

등불.

[문학]붉다; 빨갛다.


붉다. 아카시는 붉었다. 아카시의 눈동자 색처럼, 혹은 머리칼의 색처럼 아카시의 성정 또한 붉음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붉음은 모든 색들 중에서 단연 눈에 띈다. 마치 이 세상 빛깔들이 자신을 빛내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처럼.

후리하타는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후리하타는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아도, 누군가 무슨 색이 가장 좋으냐고 물으면 망설임없이 붉은 색이라고 답하곤 했다.

붉은 색은 특별하기 때문이다. 평범한 자신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후리하타는 어느 분야에서든 유독 특출나다고 여겨지는 무언가를 좋아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아카시도 후리하타에겐 마찬가지였다.

아카시라는 단어에는 증거, 등불, 분명하다 등의 뜻도 있다고 한다. 후리하타가 아카시의 이름을 알게 된 지 얼마 안 되어 신이 나서 찾아본 결과이다. 왠지 모르게 단어들이 모두 아카시를 수식할 수 있는 것만 같아 괜시리 가슴이 뜨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단어들을 조그맣게 적어 둔 노트를 아주 조심스럽게 닫고 후리하타는 다음 교시의 교과서를 서랍에서 꺼냈다.


문학시간에 선생님의 입에서 ‘살아가는 증거’와 같은 단어가 나올 때면, 후리하타의 눈동자는 저절로 아카시의 뒤통수를 향했다. 아카시는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고 곧게 앉아 수업을 듣고 있었으나 후리하타는 자신이 아카시라는 단어를 적어둔 노트의 존재를 선생님께서 알아채버린 것 마냥 안절부절못했다. 그리곤 손가락을 움직여 자신의 책상 서랍 맨 안쪽에 둔 노트를 이유없이 만지작거렸다. 당연히 아카시는 이 사실을 알 리 없었다.

아카시는 불필요한 행동이나 표정을 일체 하지 않았지만, 이따금씩 머리를 쓸어 올리거나 미간에 희미한 주름이 잡힐 때는 그것이 마치 누구를 위한 퍼포먼스인 것처럼 후리하타는 의미를 두고싶어 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후리하타에게는 아카시가 머리를 쓸어 올릴 때에 손가락에 감기는 머리카락 몇 가닥조차 큰 화면으로 보였다. 그렇게 눈이 풀릴 지경으로 넋을 놓고 쳐다보다가, 자신이 이러는 것을 알게 되면 아카시가 매우 불쾌해 할 것 같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세차게 젓곤 했다.

아카시는, 홀로 앉아 눈을 반쯤 감았다가 또 동그랗게 떴다가 고개를 젓는 대각선 뒤의 누군가가 이상하다고 잠깐 생각했지만, 곧 다시 시선을 글줄에 두었다.




* 아카시 허벅지에 빨간 꽃문신이 있길 바라며 적었던 글.....



“그럴 가치가 없어.”

언젠가 후리하타가 이제 슬슬 더워지는데 왜 반바지를 입지 않으냐고 물었을때 아카시에게 들은 대답이다.

반바지에 관한 이야기 치고는 지나치게 무거운 대답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아카시는 모든 것을 가치가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누는 것처럼 보였다. 아카시가 그렇게 자라온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면 자신 또한 아카시에게 그러한 방식으로 분류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굳이 고르라면 후리하타는 자기가 생각해도 가치가 없는 쪽이었다. 그러나 후리하타는 그것에 섭섭해하거나 실망하지 않았다. 그것은 후리하타 자신도 깔끔히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어차피 아카시는 언제나 옳았다.

입을 필요가 없어 반바지를 입지 않는다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그래도 후리하타는 내심 아쉬웠다. 하얗고 단단한 무릎뼈 위를 종종 머릿속에 그려왔기 때문이다. 어쩌면 허벅지에 화려한 꽃 문신이 있지는 않을까? 그러나 아카시의 허벅지에, 그의 눈동자와 어울리는 피빨강의 꽃이 새겨져 있든, 아님 시퍼런 생채기가 있든 간에 후리하타는 그것을 볼 수 없었다. 문득 따끔한 느낌이 들어, 아카시는 자신의 허벅지를 손으로 가볍게 쓸었다.